교회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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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자녀를 보내고 싶은 교회

 

1) 자녀를 보내고 싶은 교회 그것은 교회의 교육적 사명을 함축한 말이다.
왜 자녀를 보내고 싶은 교회를 만들어가야 할까? 가르치는 것은 전도와 함께 성서적 교회의 존재이유이기 때문이다(행전 5:42). 교회가 자녀를 보내고 싶은 교회가 되어야 할 이유는 초대교회에는 설교와 교육이 따로 존재하지 않았다. 예배하러 갔을 때 교회 안에 설교없는 예배를 생각할 수 없듯이 교육이 없는 교회도 생각할 수 없다. 설교는 회개를 불러일으키고 회심을 가져왔지만 교육은 회개하고 돌아온 사람을 양육하는 기능이다. 만약에 설교만 있고 교육이 없다면 감정주의가 되기 쉽고, 교육만 있고 설교가 없다면 주지주의가 되기 싶다. 그러므로 가르치는 교회가 되는 것은 교회의 존재 이유가 된다. 그러므로 자녀를 보내고 싶은 교회라는 슬로건을 통한 교회의 교육적 사명을 감당하려는 것은 당연한 성서적 명령이다.

 

2) 가르치기는 모두의 활동 무대이기 때문이다.
행전 13:1을 보면 안디옥 교회의 인물들은 선지자와 교사들이 함께 존재했다. 교사의 위치는 결코 선지자보다 하위직에 있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의 현실은 어떠한가? 교사들의 위치는 교회내에서 청년들만의 무대로 고정되어 간다. 이는 청년들의 신앙을 과소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사역분야가 어떻게 어떤 특정 나이대의 사람들이 섬기는 무대가 되어야 하는 것인가? 가르치기는 교회의 사역 중 하위직에 있는 것도 아니고 교회의 사역에 따라오는 부속기관의 일도 아니다. 그러므로 자녀를 보내고 싶은 교회를 만들기 위하여 가장 중요한 것은 교회안에서 교사의 정체성과 그 위치를 회복하는 것이 우선이라 하겠다. 청년을 뛰어넘어 장년들이 교사로서 헌신하는 일이 불처럼 일어나야 한다. 프라이스 퀸의 말처럼 교사는 교회교육의 열쇠를 지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3) 아이들은 영적 가능성을 지닌 인간이기 때문이다.
죄인의 회개를 촉구하는 설교, 더 나아가 회심 일변도를 지향하는 것만으로 교육이 설 자리를 잃어버리기 쉽다. 어린이들은 영적 가능성을 지닌 인간으로 보는 것이 중요하다. 어린이들을 계속 훈련에 의해서 예수의 사람으로 형성되는 길이 있기에 가르치기는 설교보다 중요한 일이 되어야 한다. 장년들의 교육도 중요하지만 다음 세대의 신앙의 주인공이 되는 이들을 위해 청년들과 어린이 신앙 교육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교회전체의 일치된 분위기가 되도록 해야 하겠다.

 

4) 교회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서이다.
2005년에 발간된 감리교 정책백서에 의하면 70년대 장년의 수와 어린이의 수가 1:1이었는데 80년대에는 1:0.5이고 90년대에는 1:0.32이고 2005년은 1:0.27이 되었다. 자녀를 보내고 싶은 교회가 되는 것은 오늘날 점차로 교회학교의 수가 줄어드는 위기를 타개할 뿐만 아니라 어릴적부터 거룩한 삶을 사는 제자를 만들어 내려는 비전인 것이다.

 

5) 양육은 부모로부터 시작된다.
그러므로 자녀를 보내고 싶은 교회는 가정의 중요성이 다시 부각되어야 하고 가정은 말로만 가르치는 곳이 아니라 그 이상의 장소가 되게 하려는데 있다. 부모의 인내와 세상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적 분위기에 의해서 가르치기는 효과적이 되고 그 양육은 교회와 연결되어 진다. 교회는 가정같이 되고 가정은 교회같이 되어 사람과 가정 안에서 명령과 훈계, 교육들이 교류되어야 한다. 따라서 가정은 교회를 통해 올바르게 세워지고 교회는 또한 가르침을 포기하지 않고 부모들과 함께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가진 제자가 되도록 교육계획을 세우고 실천해야 한다. 거기로부터 가정은 교회로 자녀를 보내고 싶고, 교회는 보내진 자녀들을 제자화 할 수 있을 것이다.

 

6) 교육연구소를 두어야 한다.
가르치기는 어떤 곳에서든지 시작할 수 있다. 그러나 가능하다면 양육을 위한 좋은 공간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그리고 교육자료와 교재를 개발하는 일을 시도해야 한다. 가르쳐 양육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이지만 도구가 준비되는 것도 중요하다. 그리고 다양한 교육방법중 최고의 방법은 말씀과의 대면임을 깨닫고 말씀을 어린아이가 이해되는 수준으로 해석하고 전달하는 일을 연구소를 두고 개발해야 할 것이다.

 

7) 교회학교는 무한한 가능성을 담고 있기 때문에 교회학교에 투자해야 한다.
교회의 지리적 위치로 볼 때 교회학교를 통해 가르치는 일에 우선을 두는 일은 가장 시급한 일이다. 우리교회의 위치는 좋은 문화적 공간이 없는 낙후지역에 서있다. 장래에 개발이 이루어져 복지시설이 세워지는 문화적 혜택이 있는 지역으로 변화 된다할지라도 교회학교를 통해 목회를 하는 것이 목회 방향에 있어서 최선의 선택이다. 사실 교회학교는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곳이다.

 

교육신학자인 와이코프의 말을 빌려본다면
(1) 교회학교는 설립하기 쉽고 유지하기 쉽다.
(2) 평신도들에게 매력이 있으며 참여의 영역이다.
(3) 교회학교는 어느 누구도 대치할 수 없는 회심과 성서적 교수를 담당한다.
(4) 교회학교는 교사와 학생이 인격적 관계안에서 헌신하는 가족적 분위기의 장이다.
(5) 교회학교는 자생하는 능력을 지닌 신비적 기관이다.

 

이렇게 보면 교회학교는 합심기도와 관심, 열정과 희생의 땀으로 가르치기 사명을 감당하면 아이들을 살려내는 놀라운 교육의 장임을 알 수 있다. 지역사회의 모든 사람들이 오목천교회에 자녀들을 보내고 싶도록 사람을 기르고 변화시키는 양육의 깃발이 내려오지 않게 교회학교에 최선의 투자를 해야할 것이다.

 

오목천교회의 비전은 6가지이다. 그러나 그 비전 중에서 자녀들에게 관심을 가지는 양육의 깃발에 우선적 초점을 두는 것은 교회가 사람을 세우는 일을 하기 위해 세워졌다고 믿기 때문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대로 하나님의 교회와 가정에게 주신 선물이 있는데 하나는 성경이고 하나는 어린이들이다.
성경의 말씀과 어린이들의 삶이 교회 교육안에서 스파크를 일으켜 민족과 교회와 역사 안에서 쓰임을 받게 된다면 교회의 제대로 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자녀를 보내고 싶은 교회가 되는 비전은 반드시 이루어가야 할 소망이요 맡겨진 의무이다.


 

비전의 공유를 위한 질문 1

 

※ 자녀를 보내고 싶은 교회 만들기 위해 가장 우선적으로 해결할 일이 무엇인가?

2. 봉사로 보람을 찾는 교회

 


  세상 사람이 예수를 믿게 되는 지름길은 듣는 것보다 보는데 있다. 믿는 자들은 세상 사람들이 예수를 믿게 되는 것이 성경 말씀을 읽어주고 듣게 해주면 된다고 생각한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다고 롬10:17이 증언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듣게 하고 읽게 하기 위해서 보다 더 강력히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어야 하는데 그 것이 보여주는 일이다. 따라서 교회는 예배의 말씀선포와 교육으로서의 말씀 양육 두 가지가 다 필요하지만 더 나아가 봉사하는 교회가 되어야 하고 봉사하는 삶이 필연적이다.
  봉사란 물론 전도를 하기 위한 조건적인 수단이 아니다. 교회가 선택하는 프로그램도 아니고 방법도 아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교회의 본질이요, 주님이 말씀하시는 필수적인 명령이다. 이것은 섬김이라는 말로 표현할 수도 있다. 교회의 머리되신 주님은 대야와 수건을 지닌 분이시다. 이 대야와 수건이란 상징은 제자의 발을 씻기는 섬김의 모습이며 세상의 병든 자와 상처받은 자와 도움을 필요로 하는 자들을 이웃으로 생각하고 섬겨야 함을 보여주는 그림이다. 그런 까닭에 예수를 따르는 성도들이 섬김으로 봉사를 드러낼 때 불신자들은 교회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보게 되며 성도들의 섬기는 삶을 통하여 예수를 믿는 일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마침내 교회의 메시지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엡4:11~12을 보라.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이유는 분명하다.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하심이라.”

 

  봉사하는 삶 ! 섬김으로 보람을 찾으려는 삶은 그리스도인이 마땅히 걸어가야 할 길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입으로 전하는 복음보다 더 강력한 영향력을 지닌 봉사의 삶을 확대하고 그 영역을 찾아나가야 할 것이다.
  봉사하게 되면 신뢰가 생긴다. 봉사하게 되면 권위가 생긴다. 봉사하게 되면 마음의 벽이 무너진다. 봉사하게 되면 삶을 아름답게 생각하게 된다. 봉사하게 되면 신앙의 가치를 높이게 된다. 봉사하게 되면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신다. 봉사하게 되면 교회의 필요성을 알게 된다. 봉사하게 되면 봉사하는 자들이 보람을 얻는다.
  봉사하기 위해서는 참된 영성이 필요하다. 봉사하기 위해서는 주님의 마음을 품어야 한다. 봉사의 태도는 자기가 나타나서는 안 된다. 봉사해놓고 자랑하고 봉사해놓고 세상적 상을 구해서도 안 된다. 봉사자의 자세는 겸손이다. 묵묵히 감당하는 것이며 반복해서 꾸준히 하는 것이다. 골3:23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이는 유업의 상을 주께 받은 줄 앎이니” 하였다. 봉사는 사람을 섬기는 것이다.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해야 하며 최선을 다하고 정성을 다 쏟아 지극한 마음으로 사람을 섬겨야 하는 것이다.

 

   변화무쌍한 이 시대가 복지 목회를 요구하고 있다. 봉사로 보람을 찾는 교회의 비전을 이루기 위해 우선 순위를 따라 복지 분야를 연구하고 봉사영역을 넓혀가야 하겠다. 디아코니아(봉사)가 있는 교회, 그 교회야말로 보람의 산실이 되지 않겠는가? 봉사는 말하지 않는 전도법이 되니 보람도 얻고 영혼도 얻고 실로 일석이조인 셈이다. 우리를 희생하고 양보하고 남을 위한 이타적 삶을 결단하면 오히려 얻는 것이 더 많게 되는 것이니 실로 봉사의 삶은 신비스러운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존경하는 테레사 여사는 인도 캘커타에서 봉사하였다. 길거리에서 비참하게 죽어 가는 사람들을 위해 사역을 하면서도 한 번도 예수 믿으라고 전도하지 않았다. 그런데 테레사 여사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다 말하길 자신들은 지금까지 수많은 선교사들이 전한 하나님을 믿지 않지만 테레사가 믿고 있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였다. 복음의 힘이란 말보다 살아가는 모습에 있음을 잘 보여주며 말로 하는 전도보다 강한 것임을 보여준다.

 

  기차를 타고 가다가 봉사의 기회가 있으면 실천하자. 직장생활을 해야 되는 개인적인 분주함 속에서도 선의 기회, 봉사의 기회를 놓치지 말자. 그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벧전 2:11~12)
  교회는 교회의 구조를 따라 봉사의 틀을 만들고 봉사할 수 있는 프로그램과 재정을 확보해가자. 봉사하는 교회로 보람을 얻는 이것이야말로 우리들의 꿈이요, 우리 오목천교회의 비전이기에 가까운 지역사회를 향해 봉사의 기를 높이 드는 교회가 되자.


 

비전의 공유를 위한 질문 2

 

※ 복지목회가 떠오르는 이 시대에 우리의 봉사의 영역에 꼭 포함시켜야 할 것이 무엇인가?

3. 삶의 비전과 희망을 주는 교회

 


  요셉은 꿈꾸는 자로 불리워진다(창37:19). 요셉의 꿈은 자기 의지로 세운 꿈이 아니었고 하나님이 보여주신 꿈이었다. 열한 형제 모두가 막내 동생 요셉을 높이고 엎드려 절한 이 꿈은 하나님이 미래의 비전으로 허락해 주신 것이다. 요셉의 형제들은 요셉을 제거하므로 요셉의 꿈이 어떻게 조각나버리고 폐기되는지를 보려하였다.(창37:20) 우물에 빠뜨려 죽이려고 했고 손이 발이 되도록 비는 요셉을 유다의 제안을 받아드려 지나가는 약대상인들에게 노예로 팔았다. 그러나 요셉은 노예로 일생을 마치지 아니했고, 애굽의 총리가 되고 하나님의 구원사에 쓰임 받는 사람이 되었다.
  꿈은 이루어졌고 아브라함과의 언약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도구로 준비되었다.

  오늘의 삶은 미래가 불확실하다고 한다. 무엇을 위해 살아야하는지 초점이 불분명하고 어디로 가야할지도 잘 모른다고 한다. 그러므로 내가 길이요 진리이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신 주님의 말씀을 따라 교회는 삶의 분명한 길과 푯대로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잠언29:18에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한다고 하였고 행전 2:17에 하나님이 모든 육체에 하나님의 영을 부어 주실 때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하였다.
  성경은 끊임없이 꿈의 필요성 비전을 주시는 성령님을 전하고 있는 것이다. 비전의 가치는 절대적이다.
비전이 있는 사람은 절망하지 않는다. 환경에 무릎 꿇지 않는다. 삶의 비전과 희망이 생긴 사람은 어떤 사건의 한복판에서도 감사하며 주어진 삶을 살아간다. 비전의 가치는 사람을 끊임없이 지치지 않게 하고 새로운 의욕을 채워준다는 것이다.

 

  미국의 대통령이었던 빌 클린턴은 태어나기도 전에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사망하였다. 그리고 그의 어머니는 재혼하고 실패함으로 어려움의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빌 클린턴이 대통령이 된 것은 1963년 존 에프 케네디와의 만남 때문이었다. 대통령 케네디가 전국 고교생 중, 40명을 선발하여 백악관으로 초청했는데 그 40명 속에 있었던 클린턴은 케네디와의 악수를 하게 되고 인생의 새로운 희망을 갖게 되었다. 훗날 대통령이 된 클린턴은 “오늘의 나는 케네디와의 악수덕분이다”라고 회고하였다.
  당시의 케네디가 40명 고교생들 앞에서 행한 연설은 "Boys Be Ambitious!" 였다. 야망을 가져라 근심의 반대는 비전이다. 비전이 없으면 근심이 쌓인다. 93년 클린턴은 민주당 전당대회 후보 수락연설에서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하거니와 란 잠언 29:18 말씀을 제목 그대로 인용하였다. 대통령 클린턴은 비전을 케네디에게서 받았고 자기 자신도 비전을 다른 이들에게 주고자 하였다. 그가 지퍼게이트라는 스캔들에 휩싸였으면서도 끝까지 견뎌낼 수 있었던 것은 언제나 아메리칸 드림을 의지했기 때문이다. 즉 미국사람들은 그 비전 때문에 대통령의 사생활의 문제를 덮어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레이 스미스라는 교회성장학자는 말하길 “비전은 사람을 더 높은 목표로 향하게 하며 또한 그들의 모든 잠재력을 발휘하게 한다”고 하였다. 만약 우리가 바라보는 인생관에 삶의 비전과 희망을 주는 곳이 교회가 된다면 우리의 인생은 이대로에서 잠재성을 폭발시키는 인생으로 변할 것이다.

 

   시카고에 있는 윌로우 크릭 커뮤니티 교회는 대지가 35만평이고 미국의 대통령도 지도력을 이 교회에서 구하고 배운다고 한다. 빌 하이벨스는 신학교 시절에 비전을 가지게 되었고 트리니티 복음주의 신학교수인 길버트 빌즈키언 교수의 강의를 듣게 되었다. 성령이 주도하는 초대교회 날마다 구원받는 사람이 더해지는 교회가 되었다고 강의할 때 그 강의를 듣는 학생 빌 하이벨스는 속에서 솟아나는 뜨거운 헌신과 삶의 미래의 희망을 바라보았다. “나를 써주세요, 내가 그 일을 하겠습니다. 사도행전 역사의 주인공이 되겠습니다.” 이 말씀이 밖으로 터져 나오는 것을 가까스로 참으면서 사역의 비전을 바라보았다고 한다.
  하나님의 성령이 주시는 이러한 비전이 우리 오목천 교회의 목회 사역을 통해 예배와 설교와 친교의 공동체적 사귐을 통해 제공된다면, 교회는 비전메이커로서 사람들을 새롭게 새우게 될 것이다.
  김선도 감독은 공군 군목시절 아무 것도 모르는 교인들에게 주님에게서 배운 비전들을 가지라고 외치다가 자기 자신이 먼저 비전의 사람이 되었고 비전대로 축복을 받아 한국감리교회의 지도자가 되었으며 최대 감리교회를 이룩한 사람이 되었다고 회고하였다.

 

  교회와 그리스도인은 언제나 비전을 선포하는 곳이 되어야 하고 비전 때문에 마음이 설레이는 삶을 이루어 가야 한다. 아무쪼록 오목천교회의 모든 사역을 통해 비전의 불타오르는 재목들이 하나둘씩 모여지다 보면 그것은 커다란 능력이 될 것이고 삶의 비전과 희망을 주는 교회는 현실로 다가오게 될 것이다. 당신은 어디에서 왔으며, 무엇을 위해서 살며, 어디로 갑니까? 글쎄요! 어디에서 왔는지 모르는데 어디로 가는지 알 수가 있겠습니까? 이렇게 방향 없는 자처럼 살아가는 민중들에게 교회는 다시 한 번 말씀 위에 서서 목적이 분명한 비전을 말해주는 삶의 발전소가 되어야 할 것이다. 꿈은 저만치 앞에서 우리를 부르고 또 쫓아가면 멀리 달아나지만 꿈을 향한 삶은 이루어지고 말 것이다.


 

비전의 공유를 위한 질문 3

 

※예배와 성경공부를 통해 하나님의 비전을 발견할 수 있다면 무엇을 먼저 시작하여야 하는가?

4. 균형잡힌 신앙으로 건강한 교회

 


  요한계시록 2~3장에는 소아시아 일곱 교회가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이 교회들에게 주시는 메시지는 똑같지 아니하고 또한 이 교회들의 신앙의 특징도 똑같지 아니하다. 그러나 이 교회들의 면모를 살펴보면 ①책망 받는 교회, ②칭찬이 있으되 책망이 있는 교회, ③오직 칭찬만 있는 교회가 있다. 이렇게 3가지로 분류되는 일곱 교회는 교회의 크기나 규모에 의해 판단된 것이 아니라 교회의 신앙의 활력성에 의해 판단 된 듯하다. 즉. 교회의 건강성을 우리 주님도 보신 것이다. 사실상 교회 구성원들의 믿음과 신앙생활 전반을 평가할 때 단지 숫자에 의해 좌우될 수는 없다. 더욱이, 예산이나 시설이나 역사나 전통에 의해서도 판단될 수 없다.
  신앙고백을 하는 구성원들의 신앙이 편협되지 아니하고 균형 잡혀 있을 때, 그 교회는 건강지수가 높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의 관심사는 체지방을 줄이고 비만을 경계하며 필요한 근육을 기르는 일이다. 찜질방이나, 달림방이 늘어나는 이유는 균형 잡힌 몸매로 건강한 신체를 유지하기 위함이다. 균형 잡힌 건강은 먹는 것을 골고루 먹고 적당한 운동을 하며 삶의 좋은 태도를 가지는데 있다. 마찬가지로 신앙생활의 균형을 유지하여 건강한 교회가 되려면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복음주의 토대 위에 세워져야 한다. 예수그리스도가 기초가 되어 있는 교회는 건강한 교회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 인해 사랑으로 역사하는 신앙이 되어야 한다. (갈 5:6)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엡 2:10)로 살아야 한다. 믿음과 행함을 본받고 믿음이 먼저요 믿음이 행함을 이끌어 가지만 행함은 믿음에 근거를 두고 하나님 사랑 이웃사랑으로 확대되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의로워짐을 받는 것은 행함이 아니고 믿음이지만, 믿음은 반드시 행함을 동반하는 실천의 지평에 있는 것이다.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은 믿음과 행동이 분리되어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다만 교리적으로 시간과 순서상으로 행함 앞에 믿음이 먼저 오는 것뿐이다. 따라서 엡 2:8의 균형 잡힌 건강한 신앙은 우리의 구원을 이루는데 중요한 기초가 된다.
  그러면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워진 사람들이 복음을 증거할 때 성령님과는 어떤 관계에 있는 것인가? 성령님은 진리의 영이시기에 복음을 전파하는데 있어서 보혜사로 돕는 분이다. 성령의 내재적 인도를 받으며 성령의 교통하시는 역사를 제한하지 않으며 성령님의 말하게 하심을 믿고 사역을 해야 한다. 구원은 철저히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에 근거하지만 증거의 사역은 철저히 성령을 의지함에 근거한다. 따라서 성령의 사역에 일어나는 힘에 대해서 균형 잡인 신앙인은 표적등과 은사를 부정하지 않는다. 그리고 신앙생활에 있어서 율법을 폐하는 것이 아니다. 건강한 교회는 오히려 율법은 온전케 하고 율법을 소중히 여긴다.(마태 5:17-20) 다만 율법을 지키는 것이 구원의 문이라는 율법주의 신앙을 거부하는 것이다. 성령으로 산다는 것은 율법주의에서 해방된 것을 말할 뿐이지 율법을 버리는 것이 아니다. 예나 지금이나 율법은 하나님의 뜻이며 구원받은 자가 살아가야 하는 원리이기에 성령의 사람은 그 율법을 묵상하고 암송하는 것이다.
  한걸음 더 나아가 균형 잡힌 신앙은 신앙생활에 있어서 신비주의자가 되는 것이 아니다. 성령은 신비의 영이다. 성령은 사랑의 지각에 뛰어난 영이요 거룩한 하나님의 영이다. 성령으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없으며 성령으로 예언되는 것 모두가 일점일획 틀리지 않는다. 신비한 은혜 신비한 은사 신비한 사역이 성령으로 일어난다. 그러나 율법이 필요해서 율법주의가 되면 안 되듯이 신앙생활에서 신비는 필요하되 신비주의가 되어서는 결코 안 된다. 신비주의 그것은 자칫 하면 신앙의 객관성을 잃어버리게 할 위험성이 있다. 신앙의 신비성은 일정하되 신비가 신앙의 전부인 것처럼 신비절대주의에 빠지는 것은 균형 잡힌 건강한 신앙이 될 수 없다.
  우리는 바울의 고백 속에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신비적 말을 160번 이상이나 읽는다. 그러나 그가 신비주의자가 되어 교회 신앙의 전체를 편협하게 만들지 않았다. 언제나 기도와 말씀이 그의 신앙의 주요한 기둥이었고 경건생활의 양면이었다. 균형 잡힌 신앙은 신앙의 인격 면에서도 어느 하나에 치우치지 않는다. 즉 지적인 신앙의 탐구, 정적인 신앙의 고백, 의지적 신앙의 실천을 포괄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균형 잡힌 건강한 신앙인격은 냉랭한 신앙, 뜨거운 신앙 이 모든 것 대부분 갈등을 일으키지 않는다. 전형적인 예배, 비 전형적인 예배 때문에 갈등을 일으키지 않는다. 부르짖는 기도, 묵상하는 기도의 형식 때문에 갈등을 느끼지 않는다. 그것은 모두 다 다른 형태의 표현일 뿐이며 틀린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다른 교파와 다른 교단의 신앙을 이해하고 포용한다. 모든 교단을 이루고 있는 타 교회들이 우리들의 형제요, 우주적으로 하나의 교회임을 알기에 연합하고 하나남의 나라를 위하여 일치의 사역을 기뻐한다. 균형 잡힌 건강한 신앙은 이 시대의 문화에 대해서도 무조건 배타적이지 않다. 문화의 내용이 종교요 종교의 옷이 문화라고 믿기에 한국의 문화를 이해하고 문화를 수용 변화시키는 신앙을 격려한다.
  그리하여 복음주의적인 오목천교회의 신앙은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되 가장 한국적이요 한국인에 의해 세워져 가는 아름다운 열매로 나타나야 할 것이다. 회심 그리고 양육을 위한 기도, 찬송, 말씀사역을 위한 비전과 지도력, 선교, 성숙을 위한 감사, 찬양, 금식, 교제를 위한 성찬, 속회, 상담, 신유, 참여 하나 하나를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이 모든 것은 신앙 성숙의 요소로 수용하는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여 언제 어디서든지, 튼튼하게 서있는 건강한 교회를 꿈꾸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 교회의 4번째 비전이 되어야 할 이유다.


 

비전의 공유를 위한 질문 4

 

※교회의 건강지수를 향상시키기 위해 가장 중요한 건강지수요소는 무엇인가?

5. 실력이 있어 주고도 남음이 있는 교회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행전20:35) 는 말씀의 가르침대로 줄 수 있다는 것은 복중의 복이다. 받는 것이 더 좋은 것 같지만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줄 수 있는 자가 훨씬 더 좋은 것이다. 누구에게든지 주려면 줄 수 있는 여력이 있어야 한다. 준다는 것은 물질을 나누는 것을 연상하기 쉬운데 꼭 물질만은 아니다. 무엇인가 주기 위해서는 마음이 먼저 가지 않으면 절대로 줄 수가 없다. 마음이 먼저 간다는 것은 삶의 태도이다.
이기적이고 나밖에 모르는 경우라면 나눠주기가 어렵다. 아예 준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다. 그러나 이타적이고 삶이 성숙해진 사람은 사랑을 실천하려고 애쓰게 된다. 귀중한 것을 나눠주고도 모자란 듯 또 나눠서 주려는 마음이 충만하게 되는 것은 특별한 마음이 아닐 수 없다.
  우리 주변에는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나 단체나 교회들이 많이 있다. 조금만 도와주기만 하면 자립하여 일어설 기회를 붙잡은 이들이 너무도 많다.

  나는 자라나면서 학창시절 진학을 포기하고 지내다가 도와준다는 말 때문에 오늘의 목사가 되었다. “교회에서 장학금을 줄테니 공부 좀 해봐”라는 목사님의 말 한마디를 믿고 나는 신학대학교에 갔다. 사실 장학금은 학교에서 받았고 교회에서 장학금을 주기로 한 약속은 나의 4년 학창시절동안 한 번도 시행되지 않았다. 어쩌다 고향교회 담임목사님의 입에서 내뱉은 공허한 말에 불과했지만 그 한마디의 말이 삶의 격려와 도전이 되어 향방 없이 살던 나 자신의 인생 길에 푯대를 세우게 된 것이다. 이제부터 새롭게 공부해서 신학교를 가겠다고 다짐하며 밤을 세우게 된 것이다. 따라서 작은 것이라도 필요를 느끼고 있는 사람에겐 전혀 예상치 않은 큰 도움이 될 수가 있다.

 
줄 수 있는 실력을 키우자. 우리 오목천교회는 작은 것부터 주는 목회를 꿈꾸며 주는 성도가 되도록 마음과 생각을 키워나가야 하겠다. 주기 위해서는 성령이 충만해야 하고 사랑이 충만해야 한다. 글자그대로 줄 수 있는 실력을 키워야만 한다. 영혼의 창고가 비어있고, 물질의 창고가 비어있고, 내 지갑과 통장이 비어있는데 무엇으로 주고도 남음이 있는 삶을 실천하겠는가?


  새 가족에게 복음을 줄 수 있도록 말씀의 실력을 키우자. 자라나는 학생들과 이웃들의 삶의 문제에 도움을 줄 수 있도록 지혜의 실력을 키우자. 아픈 사람들에게 병 문안하고 소망을 줄 수 있도록 상담의 실력을 키우자.
  바다건너 해외 선교지의 교회들을 돕고 땅 끝까지 선교를 실천할 수 있도록 해외선교의 역량과 선교후원의 실력을 키우자. 노숙자들의 문제와 빈궁한 사람들의 삶에 도움이 되기 위해 구제의 실력을 키우자.
  영적으로, 지적으로, 물질적으로 인력자원에서 풍성하여 쓰고도 남음이 있을 만큼 실력을 갖추어야 주는 교회, 주는 성도가 될 수 있다. 100개 교회를 품고 교회가 필요로 하는 곳에 향후 매년 교회를 세워나가는 교회가 되려면 오목천교회는 성장과 성숙이 함께 겸비된 부흥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주는 것은 이웃에게 무엇인가 나눠주었기에 작아지고 모자라지 않는다. 주는 것은 놀랍게도 더 새로운 것으로 채워지고 더 충만해지고 더 신이 나는 일이 생겨난다. 그것은 누가복음 6:38의 약속 때문이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주리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이 주는 법칙이 하나님의 산수의 법칙이다. 나에게 소중한 것을 남에게 주므로 분명히 마이너스가 되었지만 마이너스를 하고 나서 도리어 플러스가 되어 돌아오는 것이 하나님 산수의 기적이다. 기회가 있는 대로 실력이 있어 주고 또 주면 마이너스가 플러스만 되는 것이 아니고 플러스가 어느 순간에 곱하기로 바꾸어져서 내 삶을 풍성하게 만들어준다. 그러므로 실력이 있어 주고도 남음이 있는 교회의 비전은 하나님 산수의 기적을 만든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비전이며 오목천교회의 인생살이 셈법인 것이다. 우리는 가난하다. 가난한 지역의 서민들이다. 정말 잘살고 싶다. 풍성해지는 꿈을 갖고 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마태7:12). 이 황금률을 포기 할 수 없다. 도움을 필요로 하는 자에게 즐거운 마음으로 주고 대접을 함으로 우리는 셀 수 없는 엄청난 복으로 대접받는 이 법칙을 우리 오목천 성도는 실천할 수 있는 실력을 먼저 키우자.
하나님의 이름으로 주고 또 주는 교회와 성도가 되어 나의 가장 소중한 유산(물질, 몸과 마음, 유품)까지 모두 드리므로 유산을 자식에게 물려주지 않는데 까지 이르는 청지기 신앙의 실력을 갖추자. 하나님에게 드리고 이웃에게 드리고 국내 국외 선교를 위해 드리고 다 드린 후에도 열두 광주리 넉넉히 다시 남아있는 기적의 교회가 되는 것이 오목천 교회의 꿈이다.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딤전 6:18)


 

비전의 공유를 위한 질문 5

 

※ 주는 교회가 되기 위해 실천 가능한 것이 무엇인가?

6. 하나됨을 이루는 가정 같은 교회

 


  교회는 가정 같아야 되고 가정은 교회 같아야 한다는 슬로건이 있다. 교회는 사랑이 가득한 곳이 되어야 하고 가정은 거룩성이 가득 깃들인 곳이 되어야 한다는 말인 듯 싶다. 언제부터인가 교회는 주님을 머리로 하여 하나가 되어야 하고 또 교회는 가정 같아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교회의 특징은 다양성이다. 그러나 그 다양성은 각자의 개성이기도 하며 반드시 하나의 통일성으로 나타나야 한다. 교회가 이 시대에 세워진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교회가 분열되고 다투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주님은 요한복음 17장 수난을 앞둔 기도에서 “주여 저희로 하나가 되게 하소서” 라고 간절히 기도하였기에 하나됨을 지향하는 것은 주님을 진정 기쁘게 만들어 드리는 지체된 성도들의 길이다.

  사실 하나가 되는 교회로서의 표상은 가정보다 적절한 것이 없다. 가정은 그 어떤 사람들의 모임과 달라 사랑과 존경으로 이루어져 있다. 요사이 병든 가정, 깨어지는 가정이 많이 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가정은 네 것과 내 것이 유무상통되는 지상최고의 공동체이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인격적 개체로 존재하지만 언제나 한 몸을 이루고 한 마음을 이룬다. 그 부모들의 슬하에 있는 자녀들 역시 이 세상 어떤 것도 가로막을 수 없는 신뢰와 믿음으로 부모를 존경하며 한 울타리 안에서 돌봄을 받고 살아간다. 이 세상에 세워진 교회의 능력은 바로 가정 같은 모습으로 하나가 됨에서부터 나타난다.
우는 자들과 함께 울고 웃는 자들과 함께 웃는 공동체로서의 가정 같은 교회가 되면 원수마귀는 손 못 대고 그 교회는 부흥의 강력한 에너지를 소유하게 된다. 가정 같은 교회가 되려면 성령의 역사가 있어야 한다.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시는 노력이 교회를 이끌어갈 때 세속적 어떤 힘보다 강한 교회가 되는 것이다.

 
  가정 같은 교회의 성취는 담임목사로부터 시작된다. 가정에서 가정을 이루는 구성원들이 저마다 어렵고 힘든 일을 참지 못하여 가출을 자주 하게 된다면 그 가정은 거룩하지도 못하고 든든하지도 못하다. 마찬가지로 가정 같은 교회의 꿈은 교회 구성원들의 이동과 가출, 전입이 없어야 한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가정에서 부모의 가정지키기이다.
  부모들이 가출을 자주 한다면 아무도 그 가정을 바로 세울 수 없다. 이처럼 교회에서도 가정 같은 교회가 되려면 바로 담임자가 교회를 오랫동안 목회하려는 기도와 꿈을 지녀야 한다. 목회사역지에서 오래 머무는 것을 하나님의 허락에 의해 가능한 것이기도 하지만 목회자는 교회를 위한 장기적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을 이루려 목회에 전념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크리스웰이라는 목사님은 자신의 교회에서 50년간을 근속 목회하므로 달라스 제일침례교회를 세계적 교회로 일으켜 세웠고 LA에서 주목받는 크리스탈 쳐치도 알고 보면 로버트 슐러 목사가 평생을 목회하였다.
  한국교회에도 한 교회에서 오랫동안 목회자가 정주하며 목회한 교회들은 모두 영향력있는 교회가 되었다. 인천에 있는 계산중앙교회, 숭의교회, 부평교회, 대천에 있는 대천중앙교회등 모두 일평생을 헌신하며 목회자들이 일한 교회이다.


  존 포셉이란 목사는 영국 요오크셔주에서 출생해서 시골 교회를 담임하며 목회한 자였다. 그의 자녀들이 점점 장성하여질 때 그의 마음속에 런던이란 도시로 나가서 도시목회를 하고 아이들 교육도 잘 시키고 싶은 생각이 들어서 기도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런던의 가타스레인 교회에서 청빙을 받고 그는 하나님이 나의 기도에 응답을 하였다고 기뻐하며 웨인스케이트교회 교인들에게 새로운 교회로 떠나가야 함을 알리게 되었다.
  그의 설교를 듣고 신앙 생활하던 교인들은 포셉 목사님을 사랑하며 존경했지만 작은 시골교회에 더 이상 붙잡을 수 없다고 판단하고 런던으로 이사 가는 날 전송하기 위해 사택으로 몰려들었다. 엉엉 울고 있는 교인들을 뒤로하고 마차에 짐을 싣고 동구 밖으로 떠나가는 포셉 목사님 옆에 앉아있던 메리 사모님이 말문을 열었다. “여보 우리가 런던으로 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까요? 정녕 하나님의 뜻일까요? ”그 때 포셉 목사님은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몰았다. 계속해서 그의 사모가 저렇게 울고 있는 성도들은 어떡하구요. 마음에 큰 상처를 남겨두고 떠나는 것만이 하나님의 뜻일까요? 했을 때 존 포셉 목사님은 눈물을 닦고 있었다. 그리고는 이삿짐을 싣고 가는 우마차의 말머리를 돌려 사택으로 되돌아왔다. 그리고 곧장 사택 서재실로 돌아가 짐을 풀어놓은 후 책상머리에 앉아 시를 하나 짓게 되었는데 그것이 찬송가 525장 ‘주 믿는 형제들’이란 가사였다.
울고 있는 성도들을 버리고 떠날 수 없었던 포셉 목사님은 이렇게 썼다.

1. 주 믿는 형제들 사랑의 사귐은 천국의 교제 같으니 참 좋은 친교라.
2. 하나님 보좌 앞 한 기도 드리니 우리의 믿음 소망이 주 안에 하나라.

  이 가사를 읽어보면 얼마나 사랑이 넘치는 노래인지 모른다. 일생동안 포셉 목사는 그 교회에서 53년 동안 목회를 하였으며 그의 명성은 왕실에까지 알려져 국왕 조지3세 앞에 가서 설교까지 하는 사람이 되었다. 시골목사의 소원을 들어주겠다는 왕실의 예우에도 오직 자기 교회의 교인 아들이 감옥에 있는 것을 사면해주면 그 영혼을 잘 돌보겠다고 말하며 교인을 지극히 사랑하는 목회를 하다가 생을 마쳤다. 포셉 목사는 명예와 성공과 도시 생활보다 사람을 사랑하는 삶을 더욱 중요시 여겼던 것이다. 누구든지 한 교회에서 목회를 하고 마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은총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총을 구하며 목사가 교회이동을 자제할 때 교회는 가정 같은 교회가 되고 놀라운 부흥을 이루는 건강한 교회로 자라날 수 있다. 교인들은 가정 같은 교회의 비전을 이루기 위해 이동과 변동이 신속한 세상을 살고 있지만 한 교회를 오랫동안 섬기려는 꿈을 가지고 살아야 할 것이다. 교인들이 자주 옮겨 다니지 않고 목회자가 자주 옮겨 다니지 않고 가정 같은 교회를 세워 나가는 것은 어린아이들과 같은 단순한 이상이고 소설 같은 이야기일 수 있으나 이 비전이 오목천의 6번째 비전이다.
서로가 약점이 많고 모자람이 많으나 허물됨을 덮어주고 하나됨을 이루는 가정 같은 교회를 만들기 위해 더욱 성령의 도우심에 사로잡혀 자신을 돌아보기로 하자.


 

비전의 공유를 위한 질문 6

 

※ 사랑과 섬김이 있는 교회공동체를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과제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