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박해를 받는 교회
2020-10-18 12:11:19
OM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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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사도행전 8장 1~6절
설교자 김철한 목사
설교일 2020-10-18

사도행전 강해 24 [2020.10.18.]

 

박해를 받는 교회

(사도행전 81~6)

 

처음 교회는 사도들의 활약으로 부활의 예수님이 증언되었다. 6:7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고 하였다. 제사장은 유대교의 최고 지도자들이다. 제사장들이 이 도에 복종하게 될 때 교회는 유대교를 완전히 파괴시키는 집단들의 모임으로 생각되었다. 이런 때에 스데반 집사가 공회에 넘겨져 심문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평신도 집사인 스데반은 회중들의 돌에 맞아 예루살렘 교회의 첫 순교자가 되었다.

스데반의 순교 이후 초대 교회는 로마의 공인을 받기까지 약 280년간 무서운 박해의 시대를 겪었다. 당장 유대교 당국은 기독교 개종을 막기 위한 조치의 하나로 주후 85년경에 랍비 총회를 열어 회당 예배에 18기도문을 도입하였다. 그중 12번째 기도문은 저주 기도문이었다. 그 내용은 박해자들에게 소망이 없게 하시고 오만의 지배를 우리 시대에 근절시키오며 기독교도들과 이단자들을 일순간에 멸하시오며 그들의 이름을 생명책에서 도말하소서.”이다. 이를 볼 때 처음 기독교인들이 유대교로부터 얼마만큼 없애버려야 할 존재인지 알 수 있다.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 수많은 사람들이 스데반 순교의 뒤를 따랐는데 그 시련이 지나고 주후 325년에 니케아 회의가 열려 사도신경을 제정하였다. 그때 318명의 대표 가운데 306명은 손발이 잘려 있거나 앞을 보지 못하는 불구자였다. 그들은 순교자가 되지 못하고 살아남은 교회 지도자들이었는데 얼마나 많은 이들이 순교했는지 짐작이 된다.

한국 교회도 135년 역사 가운데 1945년부터 2006년까지 북한에서 순교한 성도의 수가 16,984명이라고 한다. 염산교회만 해도 교인의 2/377명이 순교를 당했다. 몽둥이, 죽창 등으로 때리고 수장시켰다. 영광 야월교회는 65명이 순교를 당했다. 순교는 그 땅에 순교자의 피가 적셔지는 사건이다. 그 피는 헛되지 않고 항상 하나님을 향한 순교자의 핏소리가 올라가는 땅이 된다(4:10). “우리 피를 갚아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 하나이까” (6:10) 핏소리가 하나님께 올라간다는 이 말을 사람들은 잘 모른다. 돌을 들어 사람을 피 흘려 죽게 한 사람들이나 구경꾼들이나 재판을 한 사람들이나 모두 땅이 입을 벌려 이 희생자들의 피를 받아들인다는 것을 모른다. 그리고 그 순교의 피를 흘리게 한 자를 하나님은 반드시 심판하신다는 것을 모른다. 또 회개하면 용서하시고 심판하지 않으신다는 것도 모른다.

 

오늘 본문을 보라. 스데반이 순교를 할 때 그 순교는 연이은 예루살렘 교회의 박해로 이어졌다.

박해는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럼 교회가 우겨쌈을 당하는 시련의 시기에 어떤 반응을 보였는가?

 

1. 사울: 교회를 박해하는 것을 마땅한 일로 여겼다. (8:1)

8:1에서 사울은 그가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고 하였다. 사울은 스데반의 순교시 가장 가까운 곳에서 스데반을 지켜본 이다. 7:58을 보면 스데반을 돌로 칠 때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는 청년의 발 앞에 두었다고 하였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최단거리에 서 있었던 셈이다. 사울은 스데반의 죽어가는 모습을 자세히 본 것이다. 스데반의 부르짖는 기도 내 영혼을 받으소서.” 그리고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하며 예수님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한 거룩한 스데반을 본 것이다. 그의 내면에 부딪힌 충격이 무엇이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스데반의 순교 앞에 일단 사울은 동조하는 이였다. 즉 사울은 그가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겼다. 용서나 변명이나 살릴 수 있는 기회를 찾는 노력조차 무위로 여기고 마땅히 여겼다.

사울처럼 세상 사람들은 교회를 박해하는 것을 마땅히 여긴다. 교회가 어렵고 피를 흘리고 욕을 먹고 하는 이야기가 슬프지 않다.

 

2. 성도들: 교회에 박해가 있어서 흩어졌다. (8:1)

8:1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박해가 있어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선교는 보내심을 받는 것이며 교회는 복음을 전하기 위해 흩어져야 한다. 그런데 선교적 열정에 사로잡혀 선교하는 교회가 되지 않으면 박해가 있다. 이유 없이 미움을 당하는 것도 박해이지만 교회의 뒤에는 하나님의 운행하시는 섭리의 손이 작동한다. 예루살렘 교회는 큰 박해가 일어나자 사도를 빼 놓고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졌다.

교회는 선교 열정으로 흩어져 복음을 전해야 한다. 그러나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흩어지게 하신다. 여기 흩어진다는 단어는 신약에서 3번 나오는데 슬픈 일이다. 이는 사랑하는 사람과 관계가 멀어지는 일이다. 괴로운 일이다. 박해 시 그 박해를 피하여 또는 안전한 곳을 향해 흩어져 나아가는 것을 조롱하지 말라. 흩어지는 것은 배교와 불신앙이 아니다. 슬픔을 지고 가는 일이다.

남한과 북한이 분단이 되어서 김일성이 북한을 점령했을 때 신앙의 자유와 교회를 지키려고 북에 머물다가 순교를 당한 이들도 많지만 남쪽으로 넘어온 이들이 허다하다. 조선민주당을 만든 조만식 장로는 북에서 희생을 당했지만 영락교회를 이끈 한경직 목사는 남쪽으로 내려왔다. 교회 박해 시 흩어지는 것을 비난해서는 안된다. 우리 교회의 김춘애 권사도 북에서 내려온 슬픔의 실향민이었다. 남한에 내려온 신자들은 맨손으로 이 땅에서 먹고 살았다. 곧 돌아갈 고향을 그리워하면서 살아갈 때 여기서 신앙인으로, 전도인으로 살았다. 실향민들은 땅도, 집도 내 것인 줄 알았는데 공산당이 들어오니까 다 빼앗겼다. 그래서 후회하고 회개했다. ‘신앙의 자유가 있는 남한에서 또 후회하지 말고 잘 믿고 잘 섬기자.’ 그래서 일터에서 주어지는 수입의 십일조를 드렸다. 있어도 주님의 것이요, 없어도 주님의 것이요, 공산당에게 다 빼앗기고 난 체험에서 나온 십일조 신앙으로 드릴 때 그들은 자립 경제가 되고 얻어 먹던 삶에서 나누어 주는 삶이 되었다. 당시 남쪽 교회 교인들은 십일조 신앙이 없었다. 같이 섞여 살다보니 남한 교인들이 저들의 삶을 보고 배웠다.

박해는 힘들고 아프다. 그러나 박해를 피해 흩어지는 것은 불신앙이 아니다. 믿는 자의 흩어짐 속에는 하나님의 계획이 있다.

 

3. 경건한 자들: 순교자를 위해 애도하였다. (8:2)

8:2 “경건한 사람들이 스데반을 장사하고 위하여 크게 울더라스데반의 순교는 거룩했다. 그의 얼굴은 천사의 얼굴 같았다(6:15). 그의 자세는 하늘을 우러러 보았다(7:55). 그의 언어는 신령한 세계를 설명하였다(7:56). 그의 기도는 주님을 닮아 있었다(7:59~60). 그렇다면 믿음의 순교자이기에 울어서는 안되는가? 믿음의 사람을 장사할 때 눈물을 보여서는 안되는가? 억지로 울 필요는 없지만 슬픔이 밀고 들어올 때 울지 않는 것이 믿음은 아니다. 천국이 있고 천국에 간 사람인데 울어서는 안된다는 공식은 잘못된 것이다. 여기 스데반을 장사하고 위하여 크게 운 사람들은 바로 경건한 사람들이었다. 믿음이 없는 사람들이 운 것이 아니라 믿음이 깊은데도, 하나님만 바라보는 사람들인데도 크게 울었던 것이다. 우리도 감정을 믿음이란 단어로 억제하지 말자. 울어주는 사람이 되자. 울 줄 아는 사람이 되자. 우는 것을 금기시 하지 말자. 일정 기간 울어야 한다.

 

박해는 교회를 위협하는 것이다. 그것은 교회를 부서뜨리고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넣는 일이 다반사였다(8:3). 두렵고 무서운 일이다. 그러나 예루살렘의 제자들은 흩어진 자리에서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했다(8:4). 박해의 두려움의 크기보다 말씀을 전하는 열정과 기쁨이 더 크므로 박해로 쫓겨 왔다고 가만히 있지 않았다. 그 누구도 말씀 전함을 막을 수 없었다.

예루살렘 교회가 겪는 고난과 큰 박해, 그 박해는 지역의 경계를 넘어 오히려 사마리아에 복음을 전하는 계기가 되었다. 사단은 교회를 무너뜨리려 하지만 하나님은 패하지 않으신다. 교회는 더 왕성하게 퍼져 나간다. 박해가 있을 때, 어려움이 있을 때 우리는 더욱 성령 충만하여 복음의 사람이 되자. 흩어진 삶의 현장에서 슬퍼하지 말고 증인으로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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