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평신도를 세우는 교회
2020-09-13 12:12:06
OMCH
조회수   30
본문 사도행전 6장 1~7절
설교자 김철한 목사
설교일 2020-09-13

사도행전 강해 19 [2020.9.13.]

 

평신도(집사)를 세우는 교회

(사도행전 61~7)

 

제자의 수가 더 많아지게 될 때 처음 교회는 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3천 명(2:41)에서, 5천 명(4:4), 그것도 남자의 수만 5천 명이 되었으니 여자와 어린이까지 한다면 2만 명은 되었다고 본다. 이 예루살렘 교회의 수는 더욱 늘어나게 되고(5:14), 환난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역으로 인해 제자가 더욱 많아지게 되었다(6:1). 120문도가 모인 다락방 교회는 25,000명의 예루살렘 처음 교회가 되었다.

수가 많아질 때 따라온 위기 극복의 방법으로 교회는 일꾼을 선출해야 했다. 교회 안에 제도가 들어온 것이다. 사람들은 묻는다. “교회가 보이는 교회가 있고, 보이지 않는 교회가 있다. 교회가 제도적 교회가 있고, 제도를 외면하는 무교회주의 교회가 있는데 무엇이 맞는 것인가?” 이는 논쟁과 대결 구도의 문제가 아니고 모두 다 서로를 필요로 한다고 보아야 한다. 사실 처음 기독교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성경도 교회가 제도화 되는 모습을 담은 성경(디모데전후서 등)과 무교회주의적 개념을 담은 성경(요한복음 등)이 신약 성경 27권 속에 같이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교회가 성장하는 과정에 제도화가 되어지는 것이 필요로 함을 인정해야 하고 또 교회가 제도화 되었을 때 가져올 수 있는 약점을 보완하는 보이지 않는 영적 교회론을 인정해야 한다.

18세기 역사 속에도 두 명의 말씀의 지도자가 있었다. 한 분은 웨슬리였고, 또 한 분은 휫필드였다. 휫필드는 칼빈적 감리교 운동가로 사팔뜨기였으나 입에서 나오는 말에 얼마나 은혜가 있는지 의미 없는 단어 메소포타미아라는 한 마디를 꺼내도 회개하고 거꾸러지는 역사가 일어났다. 웨슬리와는 기질과 신앙의 색채가 달랐지만 웨슬리는 야외 예배 설교자를 이끌어 낸 장본인이었다. 그리고 웨슬리는 야외 설교를 시작한 이래 주께로 돌아오는 이들을 만나주고 속회를 조직하였다. 그 결과 휫필드의 복음을 듣고 주께로 돌아온 사람들은 휫필드의 사후 어떻게 되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웨슬리의 후예들은 속회의 모임과 조직 아래에서 메도디스트 후예들이 남아있게 되고 세계 감리교회가 만들어져서 미국에서만도 1000만 명, 한국에 150만 명, 인도에 100만 명, 영국 및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 100여 개국에 감리교도를 남겼다. 그러므로 복음이 떨어졌을 때 사람의 수가 많아지면 돌봄의 효과를 위해 조직이 필요하다. 단 교회의 조직은 사람을 섬기기 위한 조직이 요구되고 조직을 위해 사람이 이용되어서는 안된다.

 

오늘 본문에서도 처음 교회가 사람의 수가 많아지면서 부딪힌 위기는 구제의 불균형 문제였다. 그래서 공정하게 일할 집사를 두기로 하여 조직 개편을 시도한 것이다. 교회가 조직을 수용했다는 것은 변화에 대한 대처 능력이다. 막히는 문제를 극복하는 새로운 시도는 우리가 배워야 할 모델이다.

교회는 언제나 본질은 바뀔 수 없다. 그러나 그 본질을 담는 그릇, 형태, 행정 사람의 조직은 바꾸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위기가 왔을 때 그냥 지나가겠지하면 안된다. 21세기는 4차 산업혁명시대, 코로나 언택시대, 초고령화로 진입하는 시대, 성경의 가치를 무용하게 보는 시대, 도덕이 땅에 떨어진 시대이다. 그래서 국제학교(1911년 사립 소학교의 부활)를 시작했고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준비하는 위원회 조직이 요구된다.

 

처음 교회가 도입한 집사 제도의 조직은 위기 해결책이었다. 그래서 온 믿는 자가 한 마음으로 사람을 세우는 자격 기준을 정했다. 그 자질은 무엇인가?

 

1. 성령이 충만한 사람 (6:3)

기독교의 교회의 첫 시작은 성령의 오심으로 되었다. 120문도가 모두 성령의 지배를 받는 이들이 되었다. 그러므로 성령 충만은 교회의 구성원이 되는 첫 번째 조건이었다. 성령 충만하여 방언을 말하고 성령 충만하여 병든 자를 고치고 성령 충만하여 모인 곳이 진동하는 이 역사는 기독교회가 보유한 신앙 색채였다.

호흡 같이, 바람처럼(프뉴마) 임하는 성령 충만 없이 집사가 되어 교회의 일을 맡는다는 것은 교회를 괴롭게 하고 본인 자신을 괴롭게 할 수 있다. 교회 안에서 임원, 집사가 되기 전에 성령 충만이 우선이어야 한다.

 

2. 지혜가 충만한 사람 (6:3)

지혜란 단어는 헬라어로 소피아(Σοφία)이다. 소피아는 그 사람의 삶에 대한 혜안(慧眼)이다. 많은 것을 가지고 있어도, 공부를 많이 하여 학문적 능력이 있어도 소피아, 즉 지혜가 부족하면 교회 집사로서는 부족하다. 지혜가 없으면 사람은 자신이 가진 것 때문에 다른 사람을 아프게 하고 본인 자신도 품격이 없게 행동한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서 사람 사이를 화목하게 하고 부딪힐 것을 피해가는 길은 지혜에서 오는 것이다.

3:17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거짓이 없나니라고 하였다. 이 지혜가 충만한 자는 다른 이들을 배려하고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거두는 이들이다(3:18). 교회는 지혜 충만한 자가 집사가 되어야 하고 교회 일을 맡아야 한다.

 

3. 칭찬을 듣는 사람 (6:3)

교회 일꾼을 선택하는 세 번째 자질은 칭찬이다. 칭찬을 듣는 사람이란 말은 다른 말로 평판이 좋은 사람이란 뜻이다. 헬라어로 마르투스에누스인데 이 단어는 행 10:22, 16:2, 22:12에도 사용되었다. 이 단어는 본래 헬라어 마르투레오(μαρτυρέω)에서 유래하였다. 이 말은 인정한다는 뜻이다. 즉 신앙과 인격이 사회적으로 공동체 안에서 인정되고 있는 것을 뜻한다.

 

이렇게 하여 사도들이 제시한 기준을 가지고 온 무리가 일곱 집사를 세웠다. 그 일곱 집사의 이름은 스데반과 빌립을 위시하여 일곱 사람의 이름이 모두 헬라 이름이었다. 세 가지 기준에 합한 사람을 찾을 때 헬라파와 히브리파를 안배하는 선택이 아니다. 오직 기준은 어디 출신이냐?’가 아니고 성령, 지혜, 칭찬에 두어 선출하였다. 이 또한 믿음의 선출이다(6:5). ‘나의 파에서’, ‘너의 파에서를 넘어 교회가 정한 기준에 맞는 사람을 택한 것은 참 교회다운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사람을 세우는 것은 본토배기들이 아니고 헬라파 본토로 들어온 사람들로 일곱 집사가 뽑히고 나자 무리들이 그들을 사도들 앞에 세웠다. 6:6을 보니까 사도들이 선택된 집사들을 위해 기도하고 안수하였다. 안수는 사람을 구별하고 세우는 예식이다. 이 안수는 일곱 집사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새로운 임무가 주어진 것을 공시하는 것이었다. 헬라파라고, 굴러온 돌멩이라고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역에 필요한 하나님의 은혜가 내리도록 축복하는 거룩한 예식이었다. 이렇게 하여 처음 교회는 조직의 수용과 또 세운 사람을 안수하는 예전을 발전시켜 가면서 위기를 뛰어넘었다. 오늘 우리 교회도 이런 열린 개방성,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도전과 창조적 대안 찾기가 필요하다.

 

그러면 처음 교회의 목회 열매는 어떻게 되었는가? 지난주에도 확인한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이 왕성해졌다.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졌다.

제사장의 무리도 이들에 복종하였다.

참으로 놀라운 초대 교회 역사다. 교회는 위기 앞에서 가만히 있으면 안된다. 해법을 찾고 위기 극복의 변화를 수용해야 한다. 우리도 내가 겪는 위기 앞에서 해법을 찾아 도전하는 성도가 되자. 위기를 피하면 파괴가 되고 위기를 도전하면 기회가 된다. 코로나의 위기가 새 기회가 되도록 하자.

댓글